회식 2차, 노래방 문이 열리고 첫 8분. 이 8분에 사람이 갈립니다. 누가 리모컨을 집는지, 첫 곡을 누가 부르는지, 누가 소파 끝으로 가서 앉는지. 잘 부르는지 못 부르는지는 안 봅니다. 그건 타고난 목이나 연습량 문제입니다. 봐야 하는 건 순서입니다.
노래방이 특이한 자리인 이유

남 앞에 서는 일이 반쯤 강제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회사 회의는 안 나서도 되지만 노래방은 결국 한 번은 돌아옵니다. 그래서 평소에 안 보이던 것이 나옵니다. 피할 수 없는 노출 앞에서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요.
저는 이 질문을 사람들에게 자주 해봅니다. 노래방에서 몇 번째로 부르시냐고요. 갑자기 웬 노래방이냐는 표정을 하시는데, 답은 다들 바로 나옵니다. 자기가 몇 번째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첫 곡을 부르는 사람

소양인은 아무도 시작하지 않을 때 리모컨을 집습니다.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조용한 상태를 못 견디는 겁니다. 여덟 명이 어색하게 앉아 있는 그 3분이 불편한 겁니다.
예약 목록도 이쪽이 채웁니다. 세 곡 네 곡씩 미리 넣어두고, 나중에는 본인이 예약한 것을 잊고 남에게 넘기기도 합니다. 남이 노래할 때 더 바쁩니다. 탬버린 치고 추임새 넣고 화면 보고 따라 부릅니다. 자기 순서가 아닌데 마이크를 계속 들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지칩니다. 한 시간쯤 지나면 소파에 기대 조용해집니다. 처음 30분에 다 쓴 겁니다. 주변에서는 아까는 그렇게 신나더니 왜 저러냐고 오해합니다. 기분이 상한 게 아니라 연료가 떨어진 겁니다. 앞쪽에 몰아 쓰고 뒤가 비는 구조라서, 일에서도 똑같습니다.
10년째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

태음인은 초반에 안 부릅니다. 부르라고 해도 나중에 하겠다고 합니다. 마이크를 쥐여주면 받긴 받는데 옆 사람에게 넘기거나 받아둔 채로 한참 있습니다.
그러다 후반에 한 곡을 부르는데, 그 한 곡이 매번 같은 노래입니다. 10년째 같은 노래를 부르는 분이 있고 20년째인 분도 봤습니다.
예순 넘으신 어느 어르신은 회식 때 부르는 노래가 30년째 같은 곡이라고 하셨습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아드님께 확인하니 진짜였습니다. 결혼식 때도 그 노래를 부르셨답니다. 왜 안 바꾸시냐고 여쭤보니 답이 이랬습니다. 이 노래는 실수를 안 하니까요.
새로 배우는 게 귀찮은 게 아니라 확실한 것을 놓기가 싫은 겁니다.
조용한 게 아니라 시선이 싫은 겁니다

소음인이 제일 복잡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게 두 갈래로 갈리기 때문입니다. 한 갈래는 구석에 앉아 끝까지 안 부릅니다. 다른 갈래는 예약은 일찍 해두고 순서가 오면 뒤로 미룹니다. 부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준비가 안 됐다고 느끼는 겁니다.
막상 부르면 정확합니다. 음정이 안 흔들리고 가사를 다 압니다. 아는 노래만 고르기 때문입니다. 고르는 데 오래 걸리는 것도 실패할 확률이 낮은 것을 찾고 있어서입니다.
코인 노래방에 혼자 가는 분들 상당수가 이쪽입니다. 노래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보는 사람이 없으면 두 시간도 부릅니다. 싫은 건 노래가 아니라 시선입니다. 이걸 구분하지 못하면 계속 오해합니다.
걸러내야 할 세 가지

- 직업. 영업직이나 서비스직으로 오래 일한 분들은 노래방에서 다 비슷해집니다. 훈련된 행동이지 성향이 아닙니다.
- 술. 두 잔 마신 사람과 안 마신 사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술이 들어가기 전 30분을 봐야 합니다.
- 서열. 부장이 먼저 부르라고 하면 그냥 부르는 겁니다. 이건 조직 문화입니다.
노래방에 안 가도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회식 문화가 바뀌어 이 지표를 못 쓰는 분이 많습니다. 대신 쓸 수 있는 자리가 여럿 있습니다.
회의에서 몇 번째로 말하는지를 보면 거의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침묵이 흐를 때 제일 먼저 입을 여는 사람, 다 듣고 마지막에 한마디 하는 사람, 끝까지 말 안 하다가 회의 끝나고 따로 찾아오는 사람. 단톡방 공지에 누가 먼저 답하는지도 같습니다. 읽고도 답을 안 하는 사람은 안 읽은 게 아니라 뭐라고 쓸지 고르고 있는 겁니다.
자신감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 나서는 사람이 자신감 있고 미루는 사람이 자신감 없다고들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먼저 나서는 사람은 그 상황이 편해서 나서는 것이지 자신 있어서가 아닙니다. 견딜 수 있는 겁니다. 미루는 사람도 못해서 미루는 게 아니라 준비를 끝내고 나가고 싶은 겁니다. 준비가 끝나면 오히려 제일 정확합니다.
이걸 자신감 문제로 읽으면 아이한테도 배우자한테도 엉뚱한 말을 하게 됩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라는 말이 잘 안 먹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번 주에 세 가지만 세어보세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몇 번째로 말을 꺼내는지, 단톡방 공지에 몇 분 만에 답하는지, 누가 나를 주목할 때 그 시간이 짧길 바라는지 길어도 괜찮은지.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합니다. 앞의 두 개는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데 주목받는 시간을 견디는 길이는 잘 안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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