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옷 이야기를 했습니다. 옷은 그래도 고를 시간이 있습니다. 매장 앞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남 눈치도 봅니다. 걷는 건 다릅니다. 의식이 끼어들기 전에 나옵니다. 그래서 걸음이 옷보다 정확한데, 대신 아무 때나 봐서는 안 됩니다. 사상체질을 걸음에서 읽으려면 걸러내야 할 것이 있고, 봐야 할 순간이 따로 있습니다.
하루 오천 걸음은 위장이 안 됩니다

한 건물에서 20년 넘게 일하신 분을 뵌 적이 있습니다. 복도 발소리만 듣고 누가 오는지 맞힙니다. 문이 열리기 전에요.
처음엔 오래 하셔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어느 날 어떻게 아시냐고 물어봤더니, 소리가 안 나면 김 아무개 님, 뚜벅뚜벅 일정하면 박 아무개 님, 빠르다가 멈췄다가 하면 이 아무개 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세 분 다 체질이 다릅니다. 사상의학을 배운 적이 없는 분입니다. 그냥 20년을 보신 겁니다.
하루에 몇 걸음 걸으시나요. 보통 오천 보에서 만 보 사이입니다. 이만큼 반복되는 행동은 위장이 안 됩니다. 처음 몇 걸음은 꾸밀 수 있어도 백 걸음째부터는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걸음에서 갈리는 세 체질

태음인은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습니다. 상체가 거의 안 흔들립니다. 위에서 보면 머리 높이가 일정합니다. 보폭과 속도가 잘 안 변해서 급한 일이 생겨도 갑자기 빨라지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하면 대부분 그냥 보냅니다. 다음 거 타면 되니까요. 발이 땅에 오래 붙어 있어서 소리가 규칙적으로 납니다.
앉는 것도 같습니다. 한번 앉으면 잘 안 일어나십니다. 회의가 두 시간이어도 자세가 그대로인 분들입니다. 3층까지 매번 계단으로 다니시는 분을 본 적이 있는데, 운동 삼아 그러시냐고 여쭤보니 기다리는 게 싫으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주 천천히 올라오십니다. 숨도 안 차십니다. 빨리 가려고 계단을 택한 게 아니라, 서서 멈춰 있는 걸 못 견디시는 겁니다.
소양인은 상체가 먼저 나갑니다. 몸보다 고개나 어깨가 반 박자 앞섭니다. 보폭이 크고 빠른데 속도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빠르게 가다 멈추고, 방향을 틀고, 다시 빨라집니다. 걸으면서 간판도 보고 옆 사람 대화도 듣다가 원래 가려던 곳을 지나칩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 손부터 집어넣습니다.
의자에 오래 못 앉아 계십니다. 다리를 떨거나 자세를 자주 바꾸시고, 끝에 걸터앉는 분도 많습니다. 20분 상담에 세 번 일어나신 분이 있었습니다. 불편하시냐고 여쭤보니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본인은 일어난 줄도 모르셨습니다.
소음인은 발소리가 작습니다. 소리가 안 나서 누가 온 줄 모릅니다. 보폭이 작고 일정한데, 태음인의 일정함과는 결이 다릅니다. 태음인은 무거워서 일정하고 소음인은 조심해서 일정합니다.
걷는 위치를 보시면 됩니다. 복도 한가운데로 안 걷습니다. 벽 쪽으로 붙어서 걷고, 사람이 많으면 뚫고 가는 대신 돌아갑니다. 카페에 들어가 한 바퀴 훑고 자리를 고르시고, 등 뒤가 트인 자리를 불편해하십니다. 대기실이 텅 비었는데도 문에서 제일 먼 자리로 가신 분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여쭤보니 뒤로 사람이 지나다니는 게 신경 쓰이신다고 하셨습니다.
태양인은 워낙 드물어서 짚고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걸음에 특징이 나오긴 하지만 표본이 적어 일반화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걸러내야 할 세 가지

바로 사람들 걸음을 보고 싶어지실 텐데, 그 전에 세 가지를 빼야 합니다.
- 신발. 구두와 운동화는 걸음이 다릅니다. 하이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같은 사람도 신발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 통증. 무릎이나 허리가 아프면 다들 비슷하게 걷습니다. 조심스럽고 느려집니다. 이건 체질이 아니라 증상입니다. 걸음으로 체질을 볼 때 제일 자주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 직업. 하루 종일 서 있는 일을 하시는 분과 앉아 계시는 분은 걸음이 다릅니다. 군 생활을 오래 하신 분도 그렇습니다.
봐야 하는 건 급할 때입니다

평소 속도만 보면 안 됩니다. 여유 있을 때는 누구나 비슷하게 걷습니다. 급할 때 어떻게 변하느냐를 봐야 합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할 때. 횡단보도 초록불이 깜빡일 때. 환승 통로에서 열차 소리가 들릴 때. 이 순간에 뛰는 사람, 속도만 조금 올리는 사람, 그냥 원래 속도로 가는 사람이 갈립니다.
누가 뒤에서 부를 때도 좋습니다. 몸 전체를 돌리는 분, 고개만 돌리는 분, 걸음을 멈추고 완전히 돌아서는 분이 다릅니다. 걸음보다 짧은 순간이라 꾸밀 틈이 없습니다.
둘이 같이 걸을 때도 잘 보입니다. 부부가 나란히 걸어가는 걸 뒤에서 보면 대부분 한 사람이 앞서 있습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자기가 앞선 줄 모르고, 뒤에 있는 사람은 매번 압니다. 이게 20년 쌓이면 서운함이 됩니다. 여행 가서 싸우는 부부의 절반은 걷는 속도 문제입니다. 한 사람은 다 보고 가자고 하고 한 사람은 앉아서 쉬자고 합니다. 취향 차이로 보이지만 몸이 움직이는 기본 속도가 다른 겁니다.
내 걸음은 신발 밑창에 남아 있습니다

관찰은 남부터 하시는 게 낫습니다. 자기 걸음은 의식하는 순간 이미 원래 걸음이 아닙니다.
그래도 본인 걸음이 궁금하시면 신발 밑창을 뒤집어보세요. 뒤꿈치 바깥쪽만 닳은 신발, 앞쪽이 먼저 닳은 신발, 전체가 고르게 닳은 신발이 다 다릅니다. 밑창은 거짓말을 안 합니다. 몇 달 치 걸음이 그대로 새겨져 있습니다.
신발이 얼마나 오래됐는지도 보세요. 3년 넘은 신발을 아직 신고 계신지, 작년에 산 신발이 벌써 망가졌는지. 걸음의 세기가 거기 나옵니다. 몇 켤레인지도 보시고요. 지난 편 옷장 이야기와 같은 원리입니다.
표본은 가족이 좋습니다. 매일 보시니까요. 배우자가 현관에서 신발 신고 나가기까지 몇 초 걸리는지, 아이가 방에서 나올 때 소리가 나는지. 그러고 나서 주변에 물어보세요. 내가 걸을 때 소리가 나는 편인지. 대답이 바로 나오면 그 자체가 답입니다.
사상체질은 이렇게 하나씩 쌓입니다. 지난 편 옷 관찰과 합치면 이제 두 개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노래방으로 가겠습니다. 회식 2차, 마이크가 한 바퀴 도는 8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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