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취는 왜 듣는가 — 180년째 아무도 모르는 뇌의 스위치

수술 직전에 마취과 의사가 열부터 세어 보라고 합니다. 여덟쯤에서 기억이 끊기고, 눈을 뜨면 수술이 끝나 있습니다. 1846년 윌리엄 모턴이 마취 수술을 처음 시연한 이래 이 절차는 매년 전 세계 수억 명에게 안전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백팔십 년이 지난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약은 있고 용량도 정확히 알지만, 그 약이 정확히 어떤 분자 스위치를 눌러 의식을 끄는지는 아무도 짚어내지 못했습니다.

닮은 구석이 없는 약들이 똑같은 일을 한다

anesthesia syringe vial tray

백팔십 년 전에 쓰던 액체 에테르, 오늘날 주사로 넣는 하얀 프로포폴, 기체로 마시는 프로판과 제논. 이 약들은 분자 구조가 서로 닮은 데가 없습니다. 어떤 것은 동그랗고 어떤 것은 길쭉하고 어떤 것은 그냥 공기 알갱이에 가깝습니다.

생김새가 다르면 몸속에서 붙는 자리도 다르고 작용하는 방식도 달라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 수십 가지 물질이 사람 몸에 들어가면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의식을 끕니다. 이 공통점이 어디서 오는지가 백팔십 년째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기름에 녹는 성질이 답이라고 믿었던 시절

olive oil beaker laboratory dropper

1899년 오버톤과 마이어가 첫 단서를 찾았습니다. 화학 구조가 아무리 달라도 그 약물이 기름에 잘 녹을수록, 즉 올리브유에 녹아드는 정도가 높을수록 마취 효과가 강해진다는 정비례 관계였습니다. 마이어-오버톤 지질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첫 번째 설명이 나왔습니다. 신경 세포의 겉면은 얇은 기름층입니다. 기름에 잘 녹는 마취제가 그 안으로 스며들면 세포막이 부풀고, 사이에 끼어 있던 이온 통로가 눌려 막힌다는 것입니다. 문틀이 부풀어 문이 안 열리는 것과 같은 그림입니다. 이 설명은 오랫동안 교과서의 정설이었습니다.

두 개의 반례

두 개의 반례

1980년대에 두 가지가 이 그림을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는 거울상 문제입니다. 화학 성분이 똑같은 약인데 분자의 좌우 방향만 뒤집자, 기름에 녹는 성질은 그대로인데 한쪽은 마취가 되고 다른 쪽은 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기름에 녹아 부푸는 것이 원인이라면 좌우 모양으로 결과가 갈릴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1984년 영국 연구팀의 실험입니다. 세포막 기름이 전혀 없는 정제된 단백질 용액에 마취제를 넣었는데, 단백질의 반응 스위치가 그대로 꺼졌습니다. 기름이 없어도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지금 가장 유력한 설명

지금 가장 유력한 설명

시선은 세포막에서 단백질로 옮겨 갔습니다. 뇌 신경세포에는 신호를 억제하는 문지기 역할의 단백질이 있습니다. 마취제 분자가 이 단백질의 작은 주머니에 끼워지면 통로가 열리고 억제 신호가 쏟아져 들어가 전기 회로가 가라앉는다는 설명입니다.

2020년에는 한 겹이 더해졌습니다. 초고해상도 현미경으로 보니, 세포막 위에 떠 있는 아주 작은 기름 덩어리의 질서가 마취제 때문에 흐트러지고, 거기 갇혀 있던 신호 효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이온 통로를 억제하는 장면이 잡혔습니다. 단백질을 직접 누르는 힘과 세포막을 물리적으로 흔드는 힘이 함께 작동한다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논이 남아 있다

그런데 제논이 남아 있다

여기서 걸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헬륨이나 아르곤, 제논 같은 비활성 기체는 전하를 띠지도 않고 다른 원자와 화학 반응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논을 마시게 하면 전신마취가 깔끔하게 일어납니다.

화학 결합이 없는데 의식이 꺼집니다. 제논 원자가 분자 사이에 끼어들어 미세한 물리적 힘만으로 통로를 누른다는 추정은 있지만, 반응 없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의식을 가라앉히는 정확한 기작은 아직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서 있는 자리

확인된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을 갈라 두면 이렇습니다.

확인된 것은 셋입니다. 마취제가 통증과 기억과 의식을 안전하게 가라앉힌다는 현상 자체, 약물이 문지기 단백질과 세포막을 교란한다는 관측, 그리고 마취 상태에서 뇌 전체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상과 피질을 잇는 정보망이 선택적으로 끊긴다는 사실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하나입니다. 구조가 제각각인 이 물질들이 결국 어떤 하나의 스위치를 건드리는가. 그 1차 스위치의 정체는 2026년 현재까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모른다고 해서 마취가 위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임상에서 안전하게 쓰는 방법은 충분히 쌓여 있습니다. 다만 왜 듣는지를 아직 모를 뿐입니다.

이 질문은 약학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취제가 의식을 끄는 원리를 밝히는 일은, 의식이 뇌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밝히는 일과 맞닿아 있습니다. 수술대 위에서 매일 반복되는 백팔십 년짜리 공백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아직 얼마나 모르는가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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