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동안 뇌를 씻어내는 물길, 수면제는 이 흐름을 막습니다

밤마다 뒤척이다 결국 약에 손이 가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약으로 든 잠과 저절로 든 잠은, 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릅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여기입니다. 잠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뇌가 스스로를 씻어내는 시간이라는 것.

잠들면 뇌 속에 물길이 열립니다

잠들면 뇌 속에 물길이 열립니다

우리 몸 곳곳에는 노폐물을 걷어 가는 관이 촘촘히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바쁘게 일하는 장기인 뇌에는 그 관이 없습니다.

2012년 로체스터 대학교의 마이켄 네더가드 교수 연구팀이 뇌 안에서 대신 그 일을 하는 배수 경로를 찾아냈습니다. 이름은 글림패틱 시스템, 쉽게 말해 뇌 전용 물청소 통로입니다.

이 통로는 깨어 있을 때는 거의 닫혀 있습니다. 깊은 잠에 들어야 뇌세포 사이 틈이 벌어지고, 뇌척수액이 그 틈으로 밀려들어 낮 동안 쌓인 찌꺼기를 쓸어냅니다.

오랫동안 동물 실험에서만 관찰되던 현상입니다. 2024년에는 뇌 수술을 앞둔 환자 5명의 고해상도 MRI에서 사람의 뇌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됐습니다.

이 물길을 미는 힘은 뇌파입니다

이 물길을 미는 힘은 뇌파입니다

그럼 무엇이 이 물을 밀어낼까요.

2024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는 그 동력으로 뇌세포의 전기 신호를 꼽았습니다. 깊은 비렘수면에 들면 수많은 뇌세포가 한 박자로 켜지고 꺼지는데, 그 리듬이 혈관을 주기적으로 오므리고 펴면서 물을 밀어내는 펌프 역할을 합니다.

연구팀이 이 동기화를 막자 뇌척수액 흐름도 멈췄습니다. 반대로 동기화를 강하게 유도하면 흐름이 늘었습니다.

같은 리듬으로 깨어나는 뇌파가 샤워기 손잡이였던 셈입니다.

수면제로 든 잠은 이 흐름을 둔하게 만듭니다

수면제로 든 잠은 이 흐름을 둔하게 만듭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실험에서 졸피뎀 계열 수면 유도 약물을 투여하자, 물길의 압력을 조절하는 신호 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 수치가 억제됐습니다. 혈관의 박동이 잦아들고, 뇌척수액 흐름도 크게 둔해졌습니다.

약을 먹고 자면 몸은 누워 있고 눈은 감겨 있습니다. 다만 그 상태가 물청소가 돌아가는 잠과 같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장기 복용자에서 치매 위험이 높게 관찰된 연구들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관찰 연구는 불면 자체의 영향과 약의 영향을 깔끔히 가르기 어려워, 약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처방받아 복용 중이라면 스스로 끊지 마십시오. 갑자기 중단하면 불면이 더 심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줄이거나 바꾸는 문제는 처방한 의료진과 상의하셔야 합니다.

많이 자면 좋을까, 답은 7시간

많이 자면 좋을까, 답은 7시간

약 50만 명 규모의 영국 바이오뱅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인지 기능과 정신 건강이 가장 좋았던 구간은 7시간이었습니다.

그래프는 직선이 아니라 U자였습니다. 8시간을 넘겨 자는 사람들에서는 인지 기능 점수가 낮고, 우울·불안 지표가 나빴습니다.

심혈관도 비슷합니다. 7시간을 기준으로 잠이 한 시간 모자랄 때마다 위험이 약 6% 올랐고, 한 시간 더 잘 때마다 약 12% 올랐습니다.

너무 길게 자는 것이 몸을 망친다기보다, 이미 몸속에 염증이나 심혈관 기능 저하가 있어 잠이 길어진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긴 잠이 원인이 아니라 신호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코골이가 심하다면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

코골이가 심하다면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

밤마다 기도가 막혀 숨이 끊기는 수면무호흡은 잠의 질을 뿌리부터 흔듭니다. 미국 성인 기준 남성 34%, 여성 17%가 해당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방치한 경우 뇌졸중·심근경색·고혈압 같은 심혈관 질환 위험이 두 배 이상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낮에 유난히 졸리고, 코골이가 거칠고, 자다 숨이 막히는 느낌이 있다면 진료를 받아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 요즘은 집에서 하는 간이 검사도 있습니다.

오늘 밤 해 볼 것

오늘 밤 해 볼 것
  • 침실 온도를 18~20도로 서늘하게. 깊은 잠에 들려면 몸 안쪽 체온이 1도 정도 내려가야 합니다
  • 주말에도 같은 시각에 눕고 일어나기. 몰아서 자는 습관이 리듬을 흐트러뜨립니다
  • 저녁 식사는 잠들기 3~4시간 전에 마치기
  • 잠들기 3시간 전부터 술 끊기. 술은 잠을 오게 하지만 깊은 잠 단계를 막습니다
  • 잠자리에서 화면 끄기. 강한 빛이 들어오면 멜라토닌 분비가 멈춥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젯밤 잠은 몇 시에 드셨습니까. 그 시각이 지난주와 같았는지가, 몇 시간 잤는지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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